[코맥 매카시] 로드
2012/01/14 16:04 폐인의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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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밤의 한기를 느끼자 손을 뻗어 옆에서 자는 아이를 더듬었다. 밤은 어둠 이상으로 어두웠고, 낮도 하루가 다르게 잿빛이 짙어졌다. 차가운 녹내장이 시작되어 세상을 침침하게 지워가는 것 같았다. 아이가 귀중한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그의 손도 덩달아 가볍게 오르내렸다.
어느날 문득, 삶이 고되고 지칠 때 삶에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을때 농담처럼 뱉어내고는 잊어버렸던, 한마디. "차라리 지구가 멸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물론 그건 내 탓이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정말로 하룻밤 사이에 큰 불길이 내가 사는 이곳을 휩쓸고 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당혹스럽다고 느껴진건 몇달 전 치과치료를 받은 후 원무과에서 내민 영수증을 마주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게다가 지나가는 우주선을 불러세워 은하계의 다른 곳으로 나를 피난시켜줄 포드 프리텍트같은 오지랖 넓은 외계인 친구도 없다. 따뜻한 음식도 없고, 어둠을 밝혀줄 전기는 꿈조차 꿀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 남는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동식물을 거덜내고도 남을 치열한 생존본능이 분명, 우리 안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각박하고 초라하다 못해 남루한 삶 속에서 여전히,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던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아버지에게 소년은 신의 언어다. 분노를 용서로 바꾸는 자비이며, 무엇이든 당연하다 여기는 착각을 꾸짖는 염치이자, 사라지지않을 마지막 믿음이다. 소설 속의 아버지와 아들 처럼 우리는 마음속에 꺼지지 않고 다만 숨어있는 불을 옮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게 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막연한 희망일 수도 있고, 열정이거나, 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써 소년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샌가 가장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소설을 읽는내내 그것들은 점점 더 선명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황량한 길위에 서 있었다. 소년이 만났던 작은 기적이 내게도 일어나길 바라며.
오늘 식탁에 오른 음식과 상쾌한 저녁 공기는 절대로 처음 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환경운동가 조지 몬비어트는 소설 <로드>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그는 2008년 1월에 게재된 기사에서 코맥 매카시가 "지구를 구할 50인" 중 한 명 임을 선언했다. 수학적 통계나 과학적 근거, 혹은 특별한 메세지나 경고 없이 그저 음울한 문장만으로 환경과 관련된 최고의 문학을 이루어냈다고 극찬한다. 환경 운동가에게 비친 <로드>는 분명 멀지않은 지구의 미래를 예견하는 하나의 예언서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로드>는 분명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선사해 주었다. 오늘 내가 먹은 따뜻한 밥한끼가, 어젯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 좋게 들이마셨던 상쾌한 저녁 공기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한 순간이나마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 혹은 어느순간 내가 타인의 행복을 빼앗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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