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호흡으로
2012/01/25 21:35 문지방삼천리
1. 왜 쓸 수가 없는지 의문이었다. 할 말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보자. 닥달하지 말고.
2. 뭔가를 쓰려고 하니 자꾸 지겨운 소리만 하게 된다. 작년에도 하고 재작년에도 하고 재재작년에도 했던 뻔하디 뻔한 나의 신상. 보여주고 싶으면서 숨기고, 숨기고 싶은데 들키고, 그렇게 아직도 서툰 사람.
3.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돈을 수 십만원 주고 배운다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그림이나 음악이나 운동은 수 십만원 줘서 배우는, 그런 속성 마스터 따위 존재하지 않는데 왜 유독 글쓰기만 그럴까? 아, 사진도 있구나.
4. 책. 누군가는 읽는 방법이 있다고 했고, 누군가는 책을 읽는 방법 따위가 있을리 없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표지까지 덮는 순간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제대로 안 읽은건 확실하다.
5. 의도하지 않았지만, 계속 두 줄씩 글을 적어 내려 가고있다.
6. 치열하게 산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빈둥대며 살고 싶다는 게 아니고, 여유를 갖고 천천히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그러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일도 많다. 나는 의식하고 싶지 않은데 의식해야 할 순간이 생기고, 그럼 난 또 바보같이 주늑이 든다.
7.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이 무지막지하게, 정말 말그대로 무지막지하게 엄청 엉뚱한 글을 써보고 싶다. 썰렁해도 상관없고 앞뒤 맥락을 짤라먹어도 상관없는 그런 유쾌한 글. 근데 이거 은근 내공이 있다. 진짜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그걸 다 수습해 나간다. 능청스럽기는 또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이런 유치하고 쓸데없는 농담에 웃어 주지 않을테다! 라고 다짐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만다. 지금 반을 좀 넘겼는데 얼른 나머지를 읽고 싶다.
8. 시간도 많은 주제에 왜 읽고 '싶다'고 하냐고? 마음이 조급해서 그런다. 자꾸 뭘 해야는데 해야는데 스스로를 몰아부치느라 정작 하고 싶은 건 못 하고 있다는 사실.
9. 왜 삶을 즐기지 못할까? 돈이 없어서? 직업이 변변찮아서? 하지만 그런 거 없이 충분히 삶을 즐기는 사람도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 같은데... 비법을 전수 받고 싶다. 단기 속성 14주 코스, 뭐 이런 거 없습니까? 진정?
10. 얼마전 다녀온 중국여행,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북경엔 아우디가 참 많습니다" 혹은 "간판이 죄다 빨갑디다" 정도.... 다른 의미로 참 무모했던 여행이었다.
11. 나랑 친구를 포함해 총 18명이 갔는데, 그 중에 아버지와 딸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짝(?)을 지어 오신 분들도 있었다. 아버지와 딸 일행은 처음엔 무슨 사이인가 궁금했다. 나는야 호기심 천국. 그리하여 혼자 중단편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거다. 미스테리고 뭐고 그냥 내 눈썰미가 0.1/0.1 이었던 거다. 마이너스. 아버지와 아들 조합은 더 재밌었다. 아들이 2학년 꼬맹인데 돌아다니는 내내 아버지에게 존댓말을 꼬박꼬박 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기특하기도 했고. 근데 마지막날 나는 이녀석의 이중생활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3박4일의 수학여행 같은 빡빡한 일정이 끝나고 저녁에 그 아버지와 아들이 묵는 호텔방에 다같이 모여 술을 마셨는데, 늦은 시간까지 게임기를 붙들고 있는 그 꼬맹이를 재우려던 작가언니(그 아버지와 딸 조합)는 입이 떡 벌어지는 반전을 목도했다. 예의바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던 그 꼬맹이가 얼른 자러가자고 얼르는 작가언니에게 안색을 싹 바꾸고 "싫어"라고 딱잘라 말했다는 거다. 그리고는 줄창 반말, 반말, 반말. 초면이고 뭐고 없다. 그리고 다음날 공항에서 내 친구가 과자를 주자 그땐 또 "고맙습니다"라고 존댓말을 하더란다. 얘 뭐야, 무서워.
12. 친구가 과자를 주면서 엄마는 어디갔냐고 묻자, 형이랑 홍콩으로 여행을 갔댄다. 이 가족 뭐야, 무서워.
13. 참견, 말자. 내 인생도 바쁘다.
14. 그래도 누군가 내 참견이 필요하다면 그땐...
15. 이것저것 쑤시지 말고, 오전엔 번역 연습과 '번역투의 유혹' 공부, 그리고 오후엔 독서와 글쓰기. 이렇게만 딱 하자.
16. 나는 이미 돈과 명예랑은 친해지기 글렀다. 너무 멀리 왔다. 잘가, 단 한번도 나와 지인이었던 적이 없던 낯선 존재들이여. 잘가라는 인사조차 좀스럽다. 언제 만난적이나 있던가. 그런 의미에서, 존심씨도. 짧았던 인연이었지만, 잘가요. 언젠가는 또 만날지도 모르지.
17. el camino de san diego 산디에고로 가는 길. 언젠가는 걸으러 갈테다.
18. 천천히, 가자. 괜찮을 동안은 괜찮아. 그렇지?
♪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 : I'm yours - jason mraz 좋다 -__-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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