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오늘 만난 점원이 불친절했던 이유

2012/01/27 21:22 문지방삼천리



1. 매너리즘, 이라는 말을 언제 처음 들었고 이해했는지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보통 이렇게 단어의 의미를 언제 습득했는지 기억하는 일은 드물지만 어쨌든 '사연'이 있다면 기억나기 마련이니까.

2. 어딜가든 누가 여기서 오래 일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건 나만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얼굴에 '표정'이 없다. 물론 천성이 무뚝뚝한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3. 반복되는 하루,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수도 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별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다. 작년에 짜증냈던 할머니는 올해도 짜증을 내고, 재작년에 진상을 부리던 아저씨는 오늘도 진상을 부린다. 하루 백 명의 손님 중 구십구 명이 평범했더라도 그중 한 명이 유독 까탈스러웠다면 그날의 기분은 지하 암반수를 파도 모자랄 지경이다.

4.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앞이 다 헤진 슬리퍼를 가져와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며 새것으로 바꾸어 가는걸 보았다. 계산대 점원의 얼굴은 잔뜩 흐렸고, 내가 올려놓은 물건을 손에 쥔채 바코드를 찍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짜증이 모락모락 피어나는게 만화를 보는 것처럼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사실 이런 분들 꽤, 많다.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들고와 바꿔달라는 둥, 포장을 뜯은 된장을 이 된장이 아니라며 환불해달라 둥, 등등등. 열거하자면 손가락이 아프다.

5. 사실 이런일은 꼭 마트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마트에서 진상인 손님은 병원에서도 진상이고, 병원에서 진상인 손님은 약국에서는 더 진상이고, 식당에서도, 영화관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대체로 진상이다. 그런데 좀 억울하다. 난 진상 손님 아닌데 왜 그 진상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나 같은 소탈하고 지각있는 개념 손님이 떠안아야 하는가, 하고.

6.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혹은 전세계적으로) '직업'은 곧 '계급'을 의미한다. 사람을 상대해야하는 서비스직은 그 '계급'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면서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어떤 멍청한 인간이 만들어냈는지 모를 '손님은 왕이다'라는 문구는 이제는 사라져야 할 일종의 '언어 폭력'이다. 이런 폭력에 장시간 노출되면 누구든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차라리 무심해지기도 한다.

7. 그러니 오늘 당신이 만난 점원이 불친절했다면, 좀 억울한 마음이 들겠지만 이렇게도 생각해주길 바란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나간다면 불쾌한 순간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나에게 서비스를 베푸는 이가 '돈을 받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하는 '기계'가 아니라, 어떤 날은 지치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울기도, 아프기도, 사랑하기도 하는, 나와 같은 '인간'임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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