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새엄마 찬양

2012/01/30 00:35 폐인의책장





1. 알폰소, 리고베르토 씨, 루크레시아, 후스티니아나.

2. 한 삼천 번쯤은 읽어야,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있겠다. 아까 금방 읽기를 마쳤는데, 알폰소 말고는 이름이 떠오르질 않아서 책장을 펼쳐가며 적었다. 작가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페루 출신.

3. 알폰소는 새엄마의 생일 날 카드를 적어 보낸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의 편지는, 전세계적 패턴인가 보다. 아이의 기특한 편지에 새엄마 루크레시아는 승리(!)에 들뜬다. '내가 이겼어. 저 아이는 날 사랑하고 있어'라고. 그런데 아이의 사랑이 좀 수상하다. 자꾸만 새엄마의 입술을 탐내고, 묘한 성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새엄마가 목욕하는 모습을 지붕에 올라가 훔쳐볼정도로 열정적이다. 한 술 더떠 루크레시아는 주체할 수 없는 나르시즘에 빠진 사람처럼, 알폰소에게 보란듯이 알몸으로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몸매를 한껏 뽐내기까지 한다.

4. 리고베르토는 알폰소의 아버지이자, 루크레시아의 남편이다. 그는 지독한 쾌락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는 음화 감상 다음으로 목욕을 즐겼고, 정식적 정화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육체는 끔찍히도 아끼면서(그는 요일을 정해, 성스러울 정도의 세정식을 하는 남자다) 영혼은 소홀히 한다. 리고베르토와 루크레시아 사이는 언뜻 평등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리고베르토는 루크레시아를 통해 자신의 환상(완벽하고 아름다운)을 채우려할 뿐이다. 그래서 늘 '당신이 누구냐'고 물어야 해야했던 루크레시아가 이번엔 당신이 내가 누군지 물어보라고 했을 때, 잠깐이지만 리고베르토는 균형을 잃은 듯한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난 그림이에요' 루크레시아가 그렇게 말하고, 설명을 덧붙이자  그의 불쾌감은 곧 그녀에 대한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5. "그게 그녀의 자주권이었을까?" 얄궂은 의문을 툭 던지는, 작가에게 나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녀는 자주권을 얻은게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그 태도가 리고베르토를 한층 더 괜찮은 남자로 격상시켰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최소한 리고베르토에게는 그렇다.

6. 루크레시아와 알폰소의 관계를 알게된 리고베르토는 결국 루크레시아를 집에서 내쫓는다. 그후 리고베르토는 '신심이 독실한 체하는 위선자'가 되고 말았다. 후스티니아나는 알폰소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지만 알폰소는 그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일 뿐이다. 천진난만한,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을 하고는.

7. 새엄마도, 후스티니아나도 알폰소의 순수하고 말간 얼굴, 그리고 빛나는 파란 눈동자를 마주치는 순간, 의심은 눈 녹듯 사그라지고, 타락한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아이는, 악마일까? 천사일까? 진실이 무엇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8. 다만, '우리는 악을 왕의 망토처럼 차분하게 두르고 단야 한다. /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체하는 후광처럼. / 대기의 투명한 진흙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윤곽은 타락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다. / 아름다움은 형식에 관한 최고의 악이다.' (세자르 모로, <죽도록 사랑하기>)

9. 다음번에 또 읽는다면 작가가 여기저기 뿌려놓은 메타포의 흔적을 깨알같이 찾아내 주워 섬기며, 에로틱한 장면들에 더이상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리라.

10. 요즘 나의 화두는 '내 안의 욕망을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11. 작년 가을에 파주에서 열렸던 '북소리'(아마도)에 구경을 갔다가, 문동에서 착한 가격(?)으로 가져온 책이다. 너무 많은 책과 가벼운 주머니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야하다"며 슬쩍 언질을 주셨었는데, 읽고나서야 그 "야함"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알게 됐다. 음... 후후후.

12. 반나절만에 다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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