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롤리타 (Lolita)

2008/07/06 17:38 폐인의책장

Lolita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권택영 옮김
민음사


제목만으로 호기심이 발동하는 책이 있다. 유명하지만, 접할 기회가 없었다거나, 좀처럼 인연이 닿질 않는 책들이 있는데. 롤리타가 그랬다. 책을 읽는 일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어서.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쩌다 손이 닿아 읽는다던가, 몇달을 벼르고 구입해 읽는 다던가 아무튼 어떤 책을 사고, 읽고, 또 되새기는 과정이 책을 읽는 과정 만큼이나 흥미롭다. 롤리타는 벼르고 벼르다가 읽은 책에 속하는데, 사실 읽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책을 읽게 됐을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대체, 어느 인물에 감정을 이입해서 읽어야하나-대체로는 '나'에 감정을 이입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나'에 감정을 이입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하는 것도 곤란했지만. 문화적 차이 라고 할까. 계속해서 이질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이 롤리타와 나는 전혀 맞질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러니까 책을 읽기전에 내가 이책에 기대했던 내용이라던가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라 당황한것도 있었다. 나는 나도모르게 책을 읽기전에 그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대충 어떤 책일까하는 상상을 하기때문이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기'였지 않았을까 싶다. 이 망할놈(!!!!)의 험버트씨가 마지막에 과연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험버트는 진정한 사랑을 했다느니, 그가 한 사랑이 순수하다느니 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 다 헛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험버트는 오로지 자기 중심적이고, 욕망에 가득찬 나이 많은 변태, 나르시즘에 빠진 아주 소심한 소아성애 도착자, 즉 범법자일 뿐이다. 그에게는 일말의 동정의 가치도 없다. 그가 소위 말하는 지식이라는 설정은 더욱 그를 비열하고 오만한 인간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이 소설이 과연 문학적으로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꼭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지 못하더라도 느낀다던지 하는 일이 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저 한 남자의 변태적인 기록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p.387~388

깊이 묻어두었던, 하지만 이제는 팔다리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 기억들이 있다. 언젠가 해가 지는 비어즐리 거리에서 그녀는 어린 이바 로즌(나는 두 님펫을 음악회에 데리고 갔는데 뒤에 어찌나 바짝 따라갔는지 거의 살이 닿을 지경이었다)에게로 돌아섰다. 그리고 아주 침착하고 진지하게 친구가 한 말에 대답을 했다. 밀턴 핀스키란 남자애가 음악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듣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그러자 롤리타는 말했다.

「죽는다는 것이 아주 두려운 것은 왠지 알아?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거야」


p.388~389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발이 다섯 개 달린 괴물이었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비열하고, 야비했고, 거칠고, 그 이상 모두였다.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했다!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 눈치챌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지옥이었다, 내 귀여운 연인. 소녀 롤리타, 용감한 돌리 실러.




롤리타(세계문학전집 30) 상세보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 민음사 펴냄
어린 소녀를 향한 성적 동경,10대 소녀와 중년의 사랑과 파멸을 그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원작 완역본. 중년의 주인공 험버트가 양녀 롤리타에게 느낀 특별한 경험과 자신만의 환상 속에 파묻혀 보낸 은밀한 기쁨을 절망적으로 묘사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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